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계산과 예측을 넘어서 윤리적, 사회적 판단까지 요구받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자율주행차의 긴급 상황 대응, 의료 AI의 생명 관련 결정, 플랫폼 알고리즘의 콘텐츠 필터링 등, AI는 다양한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AI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노자의 철학을 중심으로, AI가 수행해야 할 가치판단의 방향성과 기준을 모색해보겠습니다. 철학은 기술보다 먼저, 그리고 더 깊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노자 철학에서 배우는 비판단적 사고
노자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무위(無爲)’입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로 개입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AI가 가치판단을 할 때, 이 무위 개념은 편향을 최소화하고, 인간 중심성을 유지하는 설계 철학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AI는 대체로 훈련된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데이터에는 인간 사회의 편견과 불균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합니다. 노자의 무위 철학은 이런 ‘인위적 개입’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AI가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중립적이고 절제된 판단 방식을 취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노자는 ‘도를 따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도’는 인간 중심의 도리나 법률이 아니라, 만물의 근본 질서입니다. AI의 가치판단에도 이러한 질서와 조화, 그리고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 안에서 판단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사고방식이 중요합니다.
도덕적 기준의 AI, 무위자연의 가능성
AI가 도덕적 판단을 하려면, 명확한 윤리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윤리 기준은 문화, 시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보편적인 원칙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동양 철학, 특히 노자의 사상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유연하고 조화로운 판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노자는 "선을 행하고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은 흘러가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AI가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자기 중심적 논리’나 ‘지배적 의도’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즉, AI는 인간처럼 권위를 갖고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자를 돕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존재로 위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위자연에 기반한 AI 판단 구조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 능동적이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판단: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개입하되, 사용자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음
- 맥락 중심 판단: 단일 정답보다,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해석하고 대응
- 결과보다 과정 중심 설계: 판단이 일어난 이유와 절차가 설명 가능하고 수용 가능해야 함
판단하지 않음의 미덕, 그리고 신뢰
노자의 철학은 ‘판단하지 않는 자가 가장 많은 것을 안다’는 역설적인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AI의 판단 구조도 이 철학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AI는 너무 많은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할수록 인간의 판단력은 약화되고,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심화됩니다. 이는 결국 인간 중심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적으로는 ‘판단하지 않음’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합니다. 판단의 범위를 제한하고, 사용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상황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는 AI 설계가 필요합니다. 또한 무위자연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쌓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강요되거나 과하게 판단하는 시스템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고 납득 가능한 AI에 더 신뢰를 보입니다. 판단보다 조율, 결정보다 협력이 AI의 새로운 역할이 되어야 하며, 이는 노자 철학이 말하는 ‘도에 따른 흐름’과도 일치합니다.
AI가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정교함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며, 판단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태도입니다. 노자의 철학은 AI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바로 ‘비개입’, ‘조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인간과 함께하는 판단의 모습입니다. 기술을 넘어, 철학이 중심이 되는 AI 설계가 필요할 때입니다.